당신과 나의 어사일럼 1 문장공감



+ 당신과 류세린의 오리진
+ 1편만으로 훌륭한 심리적 탈출극
+ (타이밍 상) 대세에 부합하는 이세계 판타지
+ 류세린식 가장 예쁜 아이와 가장 멋진 아이가 이곳에
+ 확장하는 류세린 월드
+ 검은 니삭스가 공격해온다! 히이Σ(゚Д゚ノ)ノ

+- 4년전 작품의 가필수정판

- 일부 거친 묘사, 시한이 지난 개그, 다소 독기가 덜한 사회문제 해결방식
_ 어째서 니삭스의 묘사가 더 도착적이지 않은가



4년 전 인터넷 연재 사이트의 작품을 가필 수정 및 확장한 류세린 작가의 신작.

항상 팬들 사이에서 엔이세 같은 출판작과 비교되곤 했던 3대 인터넷 연재작 중 하나였고, 거칠지만 강렬하단 평을 곧잘 접하곤 했기에 흥미롭게 읽어 보았다.

뭣보다 정말 오랫만의 게임 미디어 믹스 쪽 스토리가 아닌 온전한 소설 원작 작품 아니던가. 게임 스토리 작품 쪽은 읽지 않았던 나로선 매우 반가운 신작이었다.


광고에서 본 '이세계의 잔혹한 고문 영주 소녀와 지하고문실에 소환당한 현세계의 소년'이란 도입부. 
그리고 출판 매체와는 다른, 인터넷 연재이기에 가능한 어둡고 잔인한 묘사가 예전부터 회자되어 왔던 터라, 내 상상 속의 어사일럼은 '정신나간 미소녀에게 고문당하는 미소년. 시작부터 끝까지 극한의 신체적 고문으로 정신까지 서서히 망가지고, 그러나 탈출구 따위는 없이 모두가 서서히 광기 속에서 붕괴해가는 슈퍼 암울 배드 엔딩!' 같은 이미지가 멋대로 잡혀 있었다.

최소 베르세르크 수준으로 엄청나게 고어한 장면이 들어있으려나 잔뜩 긴장하고 들어갔는데 의외랄까 다행스럽게도 내 상상의 방향성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었다. 다른 한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류세린한 테이스트의 작품이기도 했다.

심지어 4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그것도 예전에는 출판 라이트노벨로선 부적합하다고 여겨졌다는 작품이 약간의 수정과 확장을 거쳐 시류에 맞는 이세계 진입물로 돌아왔다는 것이 흥미롭다.


1권의 기본적인 컨셉은 정신나간, 그러나 절대적인 힘을 가진 소녀 감금자와 지하 수용소로부터, 신체적으론 평범하지만 냉철한 사고력을 가진 소년이 지적 능력을 이용해 탈출을 꾀한다는 탈출극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여주인공이자 이 사건의 주범인 수용소 도시의 영주, 세계에 몇 없는 최강의 마법 능력을 지닌 잔학무도한 고문왕이자 검은 니삭스(표지로 보건데 얇은 두께로 인해 형태와 냄새가 잘 전해질 것으로 추정)의 주인 은사자 백작은 한국의 평범한 고등학생인 주인공을 소환한다.
그러나 이는 주인공이 특수한 능력을 가져 이세계를 구원할 아웃소싱 용사여서도 아니고, 소환수나 신랑감이어서도 아니다. 단지 국내의 인권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인권 따위 없는 이세계의 생명체를 데려와 고문용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다 버리기 위해서일 뿐이다.

처음부터 목표가 너무도 명확한 소환이고, 일개 장난감의 말을 귀기울여 들을 이유도 없는지라 대부분의 소환된 존재들은 울고 불고 빌거나 저항하며 사망 플래그를 쌓는데 반해, 주인공은 처음부터 이상할 정도로 간단하게 편견없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재빠르게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작중 언급 처럼 끝없이 튀어나오는 사망 플래그 투성이에 심지어 시간 제한까지 붙은 선택지 앞에서 주인공은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아야 한다.

돌, 혹은 녹아가는 아이스크림을 든 어린 아이 앞의 개미 새끼나 다름 없는 관계성 속에서 주인공이 선택한 방법은 '대화'다. 이미 개미를 죽이기로 아무 가책없는 결심을 한 인간을 앞에 두고 개미는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는가? 애초에 대화가 통하기는 하는가? 설령 관대함으로 인간이 개미어를 구사해준다 치더라도 그 치명적인 힘과 가치관의 차이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뒤틀린 이세계 진입물의 이후 전개는 책에서 확인하자.


엔이세부터 시작한 나에게 엔이세와의 접점을 찾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원작이 4년이 지난 인터넷 연재작이라지만 이야기의 전개나 단권 완결성은 무척 뛰어나다. 이후의 출판작에서 보여주었던 다양한 권력 단체와의 대립과 암투, 더럽고 냉혹한 사회 대 일개 개인의 사투, 현실과 판타지와 무협요소가 뒤섞인 세계관, 페티시즘과 오타쿠 코드가 결합한 작가 특유의 그윽한 아트모스피어는 이미 이 시기부터 거의 확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인물들이 과거의 상처에 몸부림 치면서도 궁극적으론 서로를 구원해 나가는, 정상이 아니지만 사랑스런 아이들의 삶의 재생 이야기 역시 그러하다.
두 사람은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천성적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추악한 혹은 극히 현실적으로 정상적인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이 등장 인물 아이들의 구원이 되어 주었다.

작중 각 챕터 시작 전의 막간극으로 나오는 주인공의 과거-어떻게 주인공이 이렇게 침착한 괴물이 되어갔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엔이세에서 가장 좋아하는 2권의 학교 이야기가 연상되어 반가웠다.(심지어 같은 세계관의 같은 학교다!)


그러나 4년이란 세월이 흐른만큼 지금에 와서 눈에 뜨이는 단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의 거친 묘사나 감정 표현, 다소 얼렁뚱땅 넘어가는게 아닌가 싶은 마무리가 어설픈 전개, 완전히 사어가 되진 않았지만 미묘하게 세월이 느껴지는 당시의 개그코드 등.

혹자는 엔이세 1권 출간 당시의 모습만 보고 출판 라이트노벨의 프레임에 맞추느라 예전의 다크한 전개나 날카로움이 사라졌다고 아쉬워 하는 목소리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엔이세의 후속권들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본 작품을 비교해보면 개인적으로 딱히 그렇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날선 사회비판이나 어브노멀한 인물들의 독기어린 이야기는 되려 권을 거듭할수록 세련되게 다듬어져 왔다. 냉혹하고 질척한 절망적 상황에서 단숨에 엘리베이션 하며 소년이 소녀를 구한다는 가슴 뜨거운 전개는 솔직히 엔이세 쪽이 훨씬 마음에 든다.

류세린은 예나 지금이나 류세린이고, 검은 양말은 예나 지금이나 검은 양말이란 얘기지만 그래도 난 지금의 검은 양말이 좋다.

검은 양말하고 보니 에로-페티쉬 코드에 있어선 지금이 압도적으로 리미터를 해제한 상태가 아닌가 싶다. 본작에서도 사자 백작과 검은 양말이 활약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정확히 어떤 자세에서 어떤 감촉을 느끼는지, 형태나 냄새는 어떠한지에 대한 묘사는 없다고! 어떻게 된것인지!ヽ(*`Д´)ノ


결론적으로 엔이세의 길었던 빈자리를 채워주는-엔이세의 또다른 외전이건 엔이세가 어사일럼의 외전이건-류세린 테이스트 물씬 풍기는 이야기였다. 기억할 사람은 기억할 게임화 기획... 프로젝트 어사일럼... 우웃, 머리가... 전개는 오히려 지금에 와선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다시 원작 소설로서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보아하니 이세계 어사일럼의 탈출극이었던 1권 이후는 그동안 인물들의 대화에서만 언급되었던 수용도시의 내정과 이를 넘어 각자 다른 영역을 구축한 도시 단체들과의 대립이 벌어지는 본격적인 이세계 진입(영지?)물 이야기가 전개 될 듯 하다.

고유 능력을 따지면 거의 최강급인 주인공들이 어떻게 이세계를 자신들만의 색으로 물들여 나갈지, 주인공의 회상에만 언급되었던 현실 세계와의(혹은 엔이세 세계관과의)접점이 또 등장해 줄것인지 기대가 크다.

작가의 Q&A에 따르면 이미 2권의 원고는 넘어갔으며 하반기 즈음 출시될 예정이라고 하니 목욕재개하고 전X로 대기하도록 하겠다.




덧글

  • 마법시대 2015/06/29 22:09 # 답글

    으으... 노처녀를 내달란말이야...
    개인적으로는 노처녀가 더 재밌었는데 말입니다. 미여정과 같은 세계관이기도 하고...
    어사일럼도 재밋게 보긴 했었는데 묘하게 기억이 안나네요. 뒷권도 나온다면 이번에 한번 읽어봐야할듯.
    엔이세는 언제 나올려나...
  • Rain 2015/06/29 22:37 # 답글

    서적판은 아직 못 구했지만...

    생각해보면 류세린의 테이스트는 당시나 요즘이나 그다지 바뀌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다크한 전개'는 좋았지만 그런 레일 위를 달리는 캐릭터들의 조형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본작의 은사자 백작도 딱 그런 스타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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