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 콘크리트밭이 고향인 성인들을 위한 진혼가 문장공감




이런 사람에게 좋다
+ 보르자(*´д`)하아하아
+ 플롯퍼즐(*´д`)하아하아
+ 한국냄새(*´д`)킁카킁카

이런 사람에겐 별로
- 캐릭터는 빨 수 있어야 제맛이다
- 괴담 같은거 생리적으로 무리


※이하 직접적인 스포일러는 없지만 스토리 유추에 단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상당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블엔진 팝으로 돌아온 보르자의 미스터리 스릴러.
어렸을 적 살았던 동네로 돌아온 고교생 주인공이 과거의 기억과 옛 친구들과 대면하면서 기묘한 일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

한치의 어긋남 없이 치밀하게 얽히고 설킨 플롯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거대한 하나의 결말을 향해간다는 보르자 특유의 읽는 맛은 여전하다. 라이트노벨 레이블의 자매 브랜드에서 나온 책이라 해도, 일반적인 캐릭터 모에가 매우 희박한 점도 여전. 아니, 오히려 예전의 보르자 작품보다도 훨씬 그런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풍자. 밝은 면으로도 어두운 면으로도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풍자극이 극에 달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전작처럼 고등학생이 "아이고, 살펴 들어가십시오!"같은 대사를 내뱉는 개그스런 묘사는 없지만, 그 빈자리를 촘촘히 채우고 있는 것은 역시 비현실 세계가 아닌 일상적이고 추억이 새록거리면서도 추악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여러가지 의미에서 섬뜩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묘하기 짝이 없는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나고, 현실적인 감각을 잃어버릴 정도로 찐득한 괴담이 천천히 마음을 잠식한다. 과학과 논리와 인과가 지배하는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리가 없다고 애써 마음을 다잡는 주인공과 한마음이 되어, 어렸을 적 탔던 길고 위험한 미끄럼틀 처럼 무섭지만 그만둘 수 없는 강렬한 재미를 보여준다.



이하는 사실상 감상이라기 보단 단순한 개인적인 넋두리.



내가 유소년기를 보낸 곳은 5층짜리 아파트가 드문드문 서 있는 주공 아파트였다. 동네 아이들끼리 '원래 청계천 부랑자들을 수용하려고 지은 곳인데 세월이 지나고 어쩌다 보니 우리들이 살고 있더라.'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아리송한 말을 주고 받던 곳이었다. 지은지 30년이 넘어가다 보니 외벽 여기저기엔 금이 가고, 베란다 창살은 녹이 슬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아 보였다. 거기까지 흘러들어간 어른들의 사정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어린애들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넓찍한 택지에 워낙 드문드문 건물이 들어선 곳이라 나머지 공간은 온갖 나무며 풀밭이며 꽃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냥 허공에 휘둘러도 잡힐 정도로 많은 잠자리를 쫓고, 네잎 클로버를 찾으며 풀밭을 뒹굴거리는게 일과였다. 또 단지의 아이들끼리는 동네 여기저기 있는 용도가 아리송한 건축물을 탐험하고 이를 이용해 놀이기구 처럼 노는게 입소문거리이자 유행이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초등학생의 놀이라기엔 분명 위험한 행동이지만, 어렸을 땐 별로 그런 의식이 없었다.

이는 책의 도입부의 요약 비스므리한 것이지만, 내 유년기의 기억을 정리한 것이기도 하다.
본작품의 (과거)배경은 주공 아파트다. 분명 도시 속에 있지만 느릿하고 정겹고 폐쇄적이고도 배타적인 일종의 부락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다.

작품 내의 동네 묘사는 매우 현실적이다. 직접 살아본 주민이 아니고선 결코 알 수 없는 디테일함 때문에 처음엔 혹시 작가가 우리 동네 사람 혹은 같이 놀던 동네 아이들 중 하나가 아니었나 착각할 정도였다. 특히 상가 건물 3층에 있는 자재운반용인지 쓰레기처리용인지 하는 미끄럼틀이 등장했을때는 흠좀흠칫했다. (물론 주공 아파트는 어디에나 있었으면서도 생김새나 생활상은 비슷했으니 생긴 착각이었겠지만)

그 시기 꼬마들의 심리는 단순하고도 잔혹하다. 그런 놀이를 찾아다니는 무리에 끼어 있다면 그게 위험해 보이건 무섭건 모두가 하자는 대로 다들 한번씩은 해봐야 한다.
나는 아직도 어떻게 그렇게 위험천만한, 지금 시각으로는 마치 브라질 빈민촌 아이들같은 놀이를 연중내내 하고 지냈으면서도 사고를 당한 아이가 없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어쩌면 내가 어려서 몰랐을 뿐 그런 일이 있었을런지도 모르겠고.



아이들의 관계는 어른들의 관계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 친하게 지내건 어쩌건 집안 사정상 이사를 가게 되면 그걸로 끝이다. 어른들의 이해관계는 아이들의 관계에도 무의식적으로 그늘을 드리운다. 좁디 좁은 동네에서 양쪽 부모들끼리 사이가 틀어지고 소문이 퍼지면 결국 친했던 아이들도 자연스레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돈을 번다. 돈을 벌기 위해 투자를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최고의 투자처는 부동산. 모든 어른들의 욕망과 선망의 대상인 아파트다. 낡은 아파트는 언젠가 재건축을 한다. 이는 열 평 남짓한 곳에서 온 식구가 낑겨 살던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지만, 동시에 절호의,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돈벌이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이권이 걸려 있는 일이 순탄하게 흘러갈 리는 없다. 모든 이가 파벌이 되고 단체가 되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한다. 그 작은 닫힌 사회 속에서 주민들은 때론 돈을 위해서,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정말로 무엇이든.



메멘토 모리의 저변에 깔린 정서는 무서울 정도로 한국적이다. 몰개성한 아파트 단지에서 쌓아올린 아이들의 추억. 한국 사람의 집에 대한 집착. 집단의 이득을 위해 얼마든지 추악해 질 수 있는 어른들의 모습. 단지에서 나고 자랐지만, 결국 재개발로 고향이 사라져 버린 콘크리트 숲 속의 아이들.
어른의 손에 이끌려 그곳에 살았지만, 결국 어른의 손에 의해 사라져 버린 그들의 고향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에게, 혹은 그렇게 어른이 된 이들에게, 작품은 어른에, 괴담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나가라고 얘기한다. 세상의 가장 어둡고 추악한 면을 그리지만, 인간에 대한 희망만은 결코 버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살아갈 가치가 있고 희망은 항상 남아 있다며 인생을 재생해나가는 결말은 명쾌하고도 따스하다.

그리고 가끔씩은 이미 죽어버린 것들, 사라져버린 것들을 떠올리며 잊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저런 동네에서 살았던 경험이 없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인지는 아직도 아리송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저런 어른의 일에 치이고 생채기 나는 시기를 겪었던 나에게는 마치 나만을 위해서 만든 치유물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그렇듯 별1과 별5는 개인적인 편린을 톡톡 건드린 작품의 몫.





덧글

  • aa 2014/07/14 17:23 # 삭제 답글

    작명 센스는 어쩔수 없는걸까요(...)

    사실 작명센스 뿐만 아니라 작품에 깔린 정취나 분위기가 확실히 한국스럽다(?)는게 전해져오는게 작가의 특징같습니다.
  • standaloner 2014/08/01 04:06 #

    보르자는 명실공히 한국형 백마탄 초인입니다. 영원히 황야에서만 맴돌고 이쪽으론 영영 오지...못하는...(´・ω・`)
  • 흑안개 2014/07/21 16:13 # 삭제 답글

    전 진짜 재밌게 봤습니다. 흡입력이 좋아서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봤네요 ㅎㅎ
  • standaloner 2014/08/01 04:07 #

    사실 '나만 재밌게 본건가?'싶은 생각이 제일많이 드는 작품이었습죠ㅎㅎ 다행이네요.
  • kalvin 2015/03/07 07:21 # 삭제 답글

    정말 재미있게 읽은 소설입니다. 말씀하신 배경의 세세한 설명부터 시작해서 미스터리와 호러의 절묘한 배합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네요.
    리뷰를 읽었더니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졌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
  • standaloner 2015/03/09 13:41 #

    덧글을 읽다보니 저도 다시 한번 읽고 싶어지네요. 덧글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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