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식인귀의 일상 2 - 반짝 신데렐라 문장공감





러브코미디도 이능배틀도 아닌 회색빛 분위기 속에서 진지하게 살인과 죄의식에 대해 고뇌하던 1권이 너무나 마음에 드는 한편, 식인귀 히로인 쿠로에의 능력이 너무 강력해서 앞으로 어떻게 끌어나갈지 기대와 걱정이 교차했던 작품의 2권.

반년이 훌쩍 지나서야 겨우 발매되서 반갑긴 했지만 애태우며 오래 기다렸던 작품아이돌라이..에 대한 징크스라도 생기려는 모양인지 정작 내용물은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비기너즈 럭키 혹은 1권의 마법이 풀렸다고 해야할까. 안이한 러브코미디로도 이능배로도 눈가림 하지 않은채 주인공의 죄의식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갔던 신인상 수상작 다운 극단적이고도 독특한 매력은 2권에 와서 말 그대로 '안이한 러브코미디&이능배틀물화' 되면서 형체없이 사라져 버렸다.

주인공-쿠로에-리카의 건조한 삼각형 관계에 가끔 쿠로에의 입욕 서비스 신 정도가 전부였고 딱 그 정도가 좋았던 반면, 비운의 소꿉친구 리카에 비해 별다른 매력도 느껴지지 않는 두명의 신 캐릭터 사이에서 어색한 러브코미디 요소를 도입한 것이 화였다.

평범한 러브코메를 넣을게 아니라 묘한 색기를 담당하고 있는 쿠로에 한명에게 삐뚤어진 러브코메 요소를 집중시켜서 식인귀와 주인, 소녀와 소년 사이의 묘한 긴장감을 형성시키는 편이 작품 본래의 분위기도 살고 나한테도 득이 되는 전개가 아니었을까.

시도 때도 없이 공기도 못 읽고 등장해 현실성과 분위기를 번번히 수직하강 시키는 퇴마성 소속 무녀솔져 아카네의 존재는 특히 민폐중의 민폐다. 어설픈 러브 코미디 분위기에도, 이능배 분위기에도 끼어있는지라 더 그렇다.



이능요소 역시 그저 그렇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상의 요괴를 멸절시키고 정부의 퇴마 기관을 혼자서 상대할 만한 힘과, 누구라도 속이고 어떤 모습으로든 변할 수 있는 최종 보스급 스펙을 가진 히로인을 주인공이 '소유'하고 있다는 지나친 언밸런스함이 도리어 내면의 죄의식과 대비를 이룬다는 매력이 1권에는 있었다. 이후, 차례로 새로운 대적수나 미소녀가 나타나는 전개로 간다면 히로인의 이 강력함 때문에 강해보이고 멋있어보였던 레귤러급 적 캐릭터들이 픽픽 죽어버리면서 주인공의 죄책감을 더욱 부추긴다는 멋진 변칙 전개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변칙성도 퇴마성의 의뢰(퀘스트)를 받고 요괴에 홀린 일반인을 죽이지 않고 돕는다는 평범한 이능 구원병 이야기로 전락해버렸다. 심지어 너무 모범적인 능배물 흐름을 답습한 나머지 갈등과 결말이 뻔히 예상된다는 이야기로선 치명적인 문제까지 안고 있다. 또한 1권에서야 중2병적 묘사가 자주 나와도 워낙 진중한 분위기라 느끼지 못했지만, 본격적인 이능배 묘사가 나오기 시작하는 2권은 그런 묘사가 도리어 어색함을 부채질한다.


사실상 이 작품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주인공의 내면, 주인공의 죄의식 역시 무척이나 한심해졌다. 1권의 마지막에서 100% 자신의 의지에 의해 처음으로 살인 교사를 저질렀을 당시에 피어나기 시작한 그 검은 마음이 어떻게 그를 괴롭히고 몰락시켜 나갈 것인가 기대가 됐었다. 하지만 2권의 그는 진짜 동일인물인가 싶을 정도로 캐릭터성이 희미하다. 거의 최후까지 수동적인 방관자에 가까운 포지션인데다가, 마지막의 개입 역시 쮜어짜는 고뇌를 거듭한 끝에 '죽여라'라고 명했던 1권의 진중함 대신 별로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 개똥 정의론 연설 후 내리는 '살려라'가 전부다. 1권 때부터 일러스트를 보고 헤어스타일이나 생김새가 어딘가의 마술 사이드의 레벨0을 닮았단 생각은 들었지만 하는 행동이 정 반대라 소소한 유쾌함이 있었는데 이젠 그냥 행동 역시 다를바가 없게 되어 버렸다.



결론적으로 봤을때 자신의 개성을 죽이고 일반적으로 팔릴만한 요소를 도입한 결과, 평범 이하의 작품이 되버린 것 같다.

사정이 이렇게 되고 보니 '안이하게 러브코미디로도 이능배틀로도 가지 않는 회색빛 균형'이 '단지 둘 다 잘 못쓰니까 일부러 피한거 아닌가' 싶은 억하심정이 드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데... 사실 이런 사태를 부른 것은 작가의 경험부족도 그렇지만, 수도 없이 퇴짜를 놓으며 일반적으로 팔릴만한 평범한 이능배로 유도했던 편집부의 잘못이 아닐까 싶다.

너무 평범해져서 이 이상 이 작품을 볼 메리트는 없지만 3권에선 비운의 히로인인 리카가 다시 등장한다니 3권룰을 적용해 일단 지켜보겠다.




덧글

  • Rain 2013/02/21 22:48 # 답글

    그래서 4권완결이었을까요.'흔하게 팔리는 노선'이 취향이 아닌 사람의 영역은 물건너에서도 넓진 않군요...
  • standaloner 2013/02/21 22:55 #

    4권 완결이군요... 2권에서 변화시도→반응 안좋음→3권에서 살짝 원점회귀→반응 비슷→4권 조기종결의 순서가 머릿속에 그려지지만 아니기를 바랍니다.
  • ReSET 2013/02/23 19:58 # 답글

    너무 겁먹고 봐서 그런지, 1권에 비해 확실히 개성이 죽긴 했는데...그래도 그렇게까지 실망스럽진 않았음요. 그냥 평범한 요괴물이란 느낌? 제가 요괴물을 좋아해서 그런지 그냥저냥 봤습니다...

    1권과 2권의 텀이 길고, 중간에 다른 책을 많이 읽어, 1권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났던 것이 승리의 요인일지도(...)
  • standaloner 2013/02/23 20:06 #

    저도 워낙 오래되서 세부적인 내용은 거의 까먹었지만서도... 장난아니게 무겁고 축축 늘어졌던 분위기 만큼은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게 엷어진게 되게 아쉽게 느껴지더라구요.
  • afro 2013/02/26 09:47 # 삭제 답글

    확실히 1권에 비해 평범한 소년이 우연히 힘을얻어 가지게 되는 갈등, 죄의식 등 무게감이 줄었지만.....
    분명 주인공의 개성이랄까.....캐릭터성은 많이 죽었지만, 반면 쿠로에는 그나마 살렸다는 느낌
    1권은 읽는 내내 꽤나 흥미진진했지만 2권은 그런부분이 확 줄었다는 느낌이었네요
    비유적으로 표연하자면 1권은 심장이 뛰는거처럼 지그재그를 그리는 반면 2권은 멈춘 심장처럼 일직선을 그리네요
  • standaloner 2013/02/26 20:16 #

    심심찮게 역주종관계 분위기를 조장하는 쿠로에의 묘한 색기 때문에라도 일단 3권까진 한번 읽어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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