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의 왕 1 - 잔혹한 이능 서바이벌 게임 문장공감



호불호
+- 피와 살점 그리고 좀 더 많은 피와 살점
+- 인물의 정신과 육체를 나락의 나락까지 떨어뜨리는 가혹한 전개
+- 무계획적이고 불합리하기에 구역질 나는 폭력의 극한
+- 그러나 그것이 계획적이었음이 밝혀지면서 나오는 생리적 불쾌함
+- 그 누구도 안심하고 빨지 못하는 캐릭터
+- 모든 것이 반전과 기만에 특화된 정교한 이야기 구조

장점
+ 근데 이게 또 재밌엉ㅋ



달달한 청춘물에 질린 이루마 히토마가 멀쩡히 잘 있던 브리키까지 끌어들여(이미지)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는 김에 좀 더 자기 멋대로 날뛰어서 나온 결과물. 

극히 무질서하게 온갖 장르를 넘나드는 변주는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소설에서의 전통적인 카타르시스나 보상은 거의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일본 현지에서의 평이 바닥을 기었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작품 자체가 정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평가를 기대하기도 힘들었을거다.



작품은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다채로운 분위기를 오간다. 도입부는 주인공인 중2병 소년과 안쓰러운 일상을 담은 청춘물. 다음은 무능에서 조금 나은 정도의 능력을 가진 것으로 판명된 주인공이 능력자들이 모이는 폐건물이란 비일상으로 진입하는 이능력물. 다음은 처절하고 잔인한 살육의 현장에서 기지를 발휘하는 서바이벌 게임. 그 다음은 절망 밖에 없는 잔혹 료나물. 마지막은 흑막이 밝혀지면서 수수께끼가 풀리는 반전물과 클라이막스의 안티 이능 배틀물의 수순이다.

기본적인 배경은 폐건물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한정되어 있고, 때문에 서바이벌 게임으로서의 분위기가 개중에선 가장 강하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작품에서 표현한 무수한 장르적 분위기는 항상 안티테제라는 필터를 한번 거쳐 표현되는 바람에 끝없이 독자를 기만한다. 처음 분위기에 적응할 때 즈음 그 장르의 변칙을 보여주고, 또 거기에 적응하려고 할 즈음엔 즉시 장르적 분위기를 완전히 변경해서 다시금 혼란을 준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잠시도 독자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잠시간의 안정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이는 반드시 곧바로 이어지는 비극과 연결되어 있다.

철저하게 독자를 속이겠다는 의지는 이미 일러스트에서도 드러난다. 누가 브리키의 화사한 선남선녀 일러스트에서 피와 살이 튀는 잔혹한 생존물을 연상하겠는가. 제 아무리 글작가의 본래 성향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일러스트를 믿고 구입한 독자는(아마 대부분이겠지만) 이 너무나 이질적인 분위기 때문에 쉽게 지쳐버릴 수 있다.



작품의 또다른 특징은 극도의 잔혹성이다.

심심찮게 누군가가 죽고, 유혈과 구토와 침과 눈물과 뼈와 살이 쉴새없이 번갈아가며 페이지를 점령한다. 맞고 박히고 썰리고 도려내 지는 등, 멋진 척 하며 비일상을 동경했던 주인공에게 주어진 댓가는 보기 안쓰러운 수준이다. 오죽하면 주인공이란 단어보단 피해자라는 표현이 알맞을 지경이다.

이런 잔혹성은 단순히 물리적인 폭력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압박과 겸해지면서 시너지를 얻는다. 압도적인 적이 있는데 숫자도 정체도 위치도 심지어 동기도 파악할 수 없다는 무계획성과 불합리함 덕분에 독자는 한층 불안해질 수 밖에 없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압도적인 폭력은 보는 사람을 무력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본작에는 신체절단이 무척 자주 나오는데 이는 인물에게 마음의 상처 이상으로 강한 좌절과 상실감을 안겨준다. 작내 인물들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상실을 맛보게 되고, 이를 바라보는 독자의 감정 역시 이와 동조하여 해당 인물들 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분노와 복수라는 강한 동기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목차를 봐도 알 수 있듯 이 1권 전체가 대놓고 이야기의 프롤로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훼손과 상실에서 나오는 강렬한 복수심이 동기가 되어 앞으로의 이야기를 끌어나간다는 것을 볼 때, 이는 어느정도 의도한 불편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특정 경우에 한해 작가가 단순히 [전작들의 기행을 이은 안구 애호가]이기 때문이란 의혹도 조금쯤은 있긴 하다.



온갖 마이너스 감정들이 판을 치는 작품 속에서도 단연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반전으로 밝혀지는 흑막의 존재와 행동 동기이다. 정상적인 인물이 없는 본작이지만, 작가의 장기답게 흑막은 그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비정상성을 가지고 있다. 온갖 미친놈들 사이에서도 단연 발상이 너무 달라서 생리적인 혐오감이 들 정도다.

각 인물을 넘나드는 군상극으로서의 연출만 가지고 있는 줄 알았던 이야기는, 사실 [각기 다른 두 개의 시간축이 동시에 전개되다가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트릭 구조는 무척 교묘하게 숨겨져 있어서 이런 반전이 드러났을 때는 기분 나쁜 감탄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이 불편한 이야기가 볼 가치도 없는 배설물 같은 것이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못 썼으면 그냥 집어던지고 말았을텐데 솔직히 말해 이게 꽤 재미가 있다. 매번 기대와 희망을 부셔놓지만 그렇기에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정신없이 드나드는 장르적 분위기는 그 하나 하나가 꽤 능숙해서 금새 이에 빠져들게 만들고, 절대적 불리함과 생명의 위험 속에서 가끔씩 발휘하는 주인공의 기지는 짜릿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지리멸렬하고 불규칙하기만 한 줄 알았던 이야기가 매우 규칙적이고 잘 계획된 구조 속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쾌감도 각별하다.

버러지 처럼 마구 폭력의 희생양이 되었었던 만큼, 클라이막스의 이능배틀답지 않은 이능배틀에서 그동안 쌓여왔던 분노를 처절하게 폭발시키는 장면에서의 대리만족감은 딱히 환상을 부수거나 세계를 절단하는 수준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통쾌하다.



결론적으로 잔혹하고 불편하지만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변칙적인 작품이었다. 브리키의 화사한 일러스트만 봤거나, 새콤달콤하고도 안쓰러운 청춘물이나, 가슴뛰고 멋진 이능 배틀물을 기대하는 사람은 구입을 보류하도록 하자. 정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그냥 료나물이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이 정신건강을 위해 조금이라도 나은 길이다.

1권은 정말 작가가 지르고 싶은대로 막 질렀지만, 그 이후부터는 평이 점차 나아진다고 하니 1권에서 살아남은 두 명의 주인공이 앞으로 어떤 불행한 활약을 보여줄 것인지 기대한다.







덧글

  • 2013/01/19 18: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1/19 19:0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1/19 19:0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꺄르르 2013/01/20 19:20 # 삭제 답글

    완전 동감입니다! 료나물로 인식하고 샀다가 의외의재미를 봤지요
  • standaloner 2013/02/01 18:03 #

    혼돈! 파괴! 료나!
  • 다이스케 2013/05/02 04:46 # 삭제 답글

    2권을 개인적으로 재밌게봐서 리뷰글 보고싶었는데 안써주시나요? ㅠ
  • standaloner 2013/05/02 12:11 #

    글 하단 태그에서 도마뱀의 왕을 누르시면 있습니답. 저도 2권 재밌게 봤지요ㅋ 페이지 우상단의 태그 전체보기에서 컨트롤+F로 검색하셔도 되구요.
  • 류오 2013/07/29 23:04 # 삭제 답글

    주인장의 리뷰를 보고 바로 1권을 구매해서 봤는데 그 흡입력이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뒷표지의 중2병스러운 독백이 작품의 장르를 위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